아이디 ▼
비밀번호
전체

오늘: 115|어제: 94|전체: 271,181|회원: 247|문서: 510|댓글: 170|첨부파일: 5


아기예수와 성면의 성녀 데레사

 

 

< 언니 셀리나와 함께 8살때 찍은 사진 >

 

'작은 꽃(소화)' 이라 불리는 아기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873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알랑송에서 경건한 신심을 지닌 신흥 중산층의 부친 루미 마르탱과 모친 젤리게렝 사이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신앙심 깊은 부모님(현재 시복심사 중)과 네 자매 사이에서 종교적 분위기 가운데 자란 데레사는 15살에 리지외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여 9년간 수도생활을 하였으며, 1897년 9월 30일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리지외 수녀원 내정>

 

성녀의 영혼을 가까이서 잘 알고 있던 이들에게 그의 성성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으나, 함께 살던 수녀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성녀의 삶은 "특별히 언급할 것이 없는 그저 매우 친절했고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존재"로 비추어졌다.

그런데 이 짧고 숨겨져 있는 그 인생이 전 세계를 뒤흔든 것이다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은 강인한 의지, 어린이와 같은 단순함 속에 깃든 예리한 판단력과 섬세한 감수성, 지독한 병고 중에도 예외 없이 계속해 온 일상생활, 혹독한 영적 메마름을 겪으면서도 확고한 평화를 간직했으며, 고통 중에

더욱 타오르는 헌식적인 봉사로 일관한 데레사 성녀는 철저하게 하느님 안에 감추어진 삶이었다.

 

189569일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 때 '좋으신 하느님의 자비하신 사랑에 희생 제물'로 자신을 봉헌한 성녀는 더욱더 지출 줄 모르게 자기 부정의 어두움을 강인하게 버티어내며 자신의 가장 큰 특징인 단순함으로 독수리처럼 응시하면서 곧바로 하느님께 나아갔다.

영웅적인 고행의 실천이나 특별한 수덕행위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평범한 일들을 온 존재를 담아 사랑으로 행할 줄 알았던 성녀는 이것을 "장미꽃을 뿌린다"고 시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을 온전히 잊고 기도와 희생으로 이 세상을 포옹하기 위해 "자모이신 성교회의 심장 안에서 사랑이 되는

"자신의 성소를 발견한다.

 

 

< 1996년 6월초 (23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한다. "성령께서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를 통하여 근본적인 신비, 즉 복음의 근본적 현실을 현대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작은 길" 은 "어린이의 거룩한 길" 입니다. 그 안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세계적 진리가 재확인되었습니다. 곧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는

그분의 아이'라는 것입니다." 성녀 안에서 보아야 할 것은 참으로 작은 일상 사건을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크나 큰 신비의 현실로 바꾸어갈 정도로 불태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그 자체이다.

하느님 말씀(성경)의 중요성, 일상생활에서 대신덕을 우선으로 하는 것,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의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덕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과 복음 선교의 사명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에 대한 형제적 이해와 배려, 천국에 관한 역동적 사고방식, 형제애를 가르치는 방법, 성모 마리아

에 관한 신학...

이러한 데레사 성녀의 예언적 가르침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많은 빛을 비추어 주었고 오늘의 모든 이들은 물론 미래의 세대에게도 하느님의 선물은 더 잘 이해하고, 무한한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데 끊임없이 도와줄 것이다.

 

 

 

<1896년 3월 21일 사촌언니 마리게랭 착복식>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923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

1925년 5우러 17일에 시성되었고,

1927년 포교사업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으며,

1997년 10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녀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