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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르멜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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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의 기원 (The Origin of the Carmelite Order)

< 가르멜 산 >
보통 '가르멜회' 라고 부르는 우리 수도회의 정식 명칭은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수도회'이다 가르멜은 이스라엘 서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하이파로부터 약 30Km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갈릴레아 지방에 속한 지중해 연안에 있느 해발 546m의 산 이름으로 '비옥한 땅, 포도밭'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수도회의 발상지는 가이사리아 해변 너머 지중해로 이어지는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가르멜산 중턱에 엘리아샘이 있는 와디 아인 에스 시아 (Wadi Ayines siah)라는 곳이다.

<가르멜산에 있는 엘리야샘 >

<초대 은수자들이 거처하던 동굴>

<가르멜산의 최초의 수도원 Wadi Ayin es siah>

기원전 922년경 다윗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왕국으로 분할된 후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배교를 막기 위해서 활약한 예언자들 중 엘리아 예언자가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을 벌인 곳인 곳에서 좀 더 떨어진 곳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엘리아샘은 구약시대에 엘리아 예언자가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서 그릿개울에 숨어 지내며 개울물을 마셔라. 음식은 까마귀들을 시켜 날라다 주도록 하리라."(1열왕 17,3~4)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은수생활을 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엘리아가 "세상에서 멀리 떠나... 동쪽으로 가서... 숨어 지내며..." 신적 관상을 목표로 은둔적, 수도자적, 예언자적 생활을 하며 그를 따르던 이들에게 전수한 이 삶을 우리 가르멜 수도회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창립사]에 이렇게 쓰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온 거룩한 예언자들의 맥을 주시하십시오."(창립사29,33)
"살아계신 야훼 앞에 나는 사랑에 불타노라"(1열왕19,14) 하신 엘리아의 정신을 따라 구약시대인 기원전 950여 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 엘리아 예언자 때부터 기원후에 이르기까지 교회 전승은 이곳에 엘리아의 정신을 따르는 후계자들이 대대로 살아왔다고 한다.
12세기에 와서 팔레스티나 성지 회복을 위해 십자군 전쟁에 나선 경건한 신자들 중 일부도 성지 회복 후에 가르멜산에 남아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고 은수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 당시에는 수도회의 명칭도 가르멜회가 아니라 엘리야 수도회라고 불렀다.

<성모님께 봉헌된 최초의 경당>

1281년,1294년 1324년의 가르멜 회헌에도 "가르멜산의 경건한 주민 엘리아와 엘리사를 비롯한 구약과 신약의 사부들은 이 산의 고독을 깊이 사랑하고 그 곳에 있는 엘리아샘 근처에서 거룩한 보속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이 생활은 수도자의 무리로 이어져 끊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브로카르도와 그에게 순명하며 살고 있던" 라틴계 은수자들은 법적 체계의 필요성을 느껴 1206~1214년 사이에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성 알베르토의 손을 통해 정식으로 교회의 인준을 받음으로써 그들의 존재가 교회 역사 안에 드러나게 되었다. 성 알베르토가 제정한 최초의 회규는 1226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수도회 회규로서 첫 인증을 받았다.

<최초의 회규>

초대 가르멜 수도자들의 삶은 엘리아 예언자처럼 '그릿개울에 숨어사는' 철저한 은수자 생활이었다. 그러나 회교도들의 팔레스티나 점령으로 1230년대에 유럽으로 수도회가 이주하게 되면서 수도회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유럽으로 옮겨온 팔레스티나 사막의 은둔자들이 도시에 거주하게 되면서 유럽의 환경에 맞게 기본적 은수생활을 고수하면서도 시대적 요청에 따른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게 되어 1247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원초적 은수 정신과 아울러 사도직 실천을 겸비한 탁발 수도회로 최종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유럽으로 이주한 가르멜 수도회는 수도회의 정체성과 외적 변화에 따른 어려움의 소용될이 속에서 당시 총장이던 성 시몬 스톡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수도회를 영구히 보호해 주시겠다는 표지로 가르멜 성의(스카풀라)를 직접 건네 주심으로써 굳건한 영적 도약을 하여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크나큰 성장을 이룩해나갔다.

<성모님께서 성 시몬 스톡에게 건네주신 스카풀라>

복음과 최초의 회규 정신에 충실하였던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완화된 가르멜회를 개혁하여 1562년 아빌라의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하였다. 성녀는 또한 개혁 가르멜 수녀들의 '관상적이며 사도적인 소명'을 함께 지니며 사목적 봉사의 직무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남자 가르멜도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는데 때마침 갓 사제서품을 받은 마티아 수사(십자가의 성 요한)를 마나면서 개혁 가르멜 수도회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되었다.
개혁 이후 지난 400여 년 동안 가르멜 수도회는 트렌트 공의회와 제 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개혁, 쇄신, 적응하면서 예수의 데레사 성녀, 십자가의 성 요한, 데레사 말가리다 성녀, 콩피엔느의 순교자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마리아 복녀, 전 세계 포교사업의 수호자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복녀, 로스 안데스의 예수의 데레사 성녀, 과달루하라의 순교자들, 성 요셉의 칼리노프스키 성인, 유럽의 수호자 성녀 에디트 슈타인등 수마낳은 성인 성녀를 배출함으로써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관상적 사도직을 드러나지 않게 구현하고 있다.
가르멜 수도회는 현재 전 세계 126개국에 850여개의 남녀 가르멜 수도원이 있는 국제 수도회로서 11657명의 수녀와 4051명의 수사들이 있으며, 가르멜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여러 활동 수도회와 가르멜 영성을 세상 한 가운데서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많은 3회원들이 가르멜의 영적 가족으로 유대를 이루고 있다.